흑백 논리와 변곡으로 다사다난 했던 2025년도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2025년의 끝에서 국정을 돌아보는 질문은 더 이상 수사적일 수 없다. 지난 1년간 국가 운영의 중심이 과연 국민에게 있었는지, 아니면 권력 스스로를 향해 기울어 있었는지를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할 시점이다. 성과를 나열하는 것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문제는 방향이고, 태도이며, 책임이다. 올해 국정은 유난히 ‘속도’를 앞세웠다. 그러나 속도는 곧바로 졸속으로 이어졌고, 졸속은 설명 부재와 책임 회피를 낳았다.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정책 결정은 반복됐고,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돌아온 답은 “불가피했다”는 말뿐이었다. 국정 운영이 사후 해명에 의존하는 순간, 민주적 통치는 이미 균열을 시작한 것이다. 국회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연말마다 되풀이되는 입법 강행과 속도전은 이제 관행을 넘어 고질이 됐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처리 과정에서 숙의와 조정은 형식으로 전락했고, 소수 의견은 걸림돌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빠른 결론이 아니라 정당한 과정에서 성립한다. 절차를 무시한 입법은 법률로 포장된 권력 행사에 불과하다. 리더십의 문제는 더 뚜렷하다. 강한 리더십과
통일교 자금 수수 의혹이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금전 스캔들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 정치의 도덕적 최소선이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종교 단체의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 앞에서, 국민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아직 지켜야 할 선이 남아 있는가? 정치와 종교의 결탁 의혹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모인 자금이 정치적 영향력 확보의 수단이 됐다면, 이는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행위다. 동시에 정치가 종교 조직을 지지 기반이나 재정적 후원자로 활용했다면, 그 순간 정치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사익의 도구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는 정책과 가치의 경쟁으로 유지돼야지, 은밀한 자금 흐름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의 태도다.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사과는커녕 “개인적 일탈” “관계가 없다”는 말로 선을 긋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이미 정치권 전체가 도덕적 공범처럼 비친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책임져야 할 주체들이 의혹 앞에서 침묵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스스로 신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이번 논란이 특정
국회가 회기 마지막 날인 어제 61년 만에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은 “입법 마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야당은 “민주주의 파괴이자 소수 의견 묵살”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역사적 전례 자체가 희귀할 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한 가지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회의 모습인가?”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아당인 국민의 힘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 관련해서 강력한 필리버스터 저항을 통해 올해 국회 회기 마지막날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는 나경원 의원에 대해 시작 13분만에 우원식 의장이 의제와 무관하다며 마이크를 끈 것이 발단이 되어 의장석은 여.야 의원들이 몰려 나와 난장판이 됐다. 필리버스터는 원래 소수 의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다. 다수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민주주의의 기초 장치다. 하지만 최근 필리버스터는 소수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 무기
쿠팡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충격과 우려에 휩싸였다. 이름·연락처·주소·주문 내역 등 일상적 생활 정보가 포함된 이번 유출은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라,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의 보안 체계가 얼마나 취약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민이 제공한 정보는 기업의 자산이기 이전에 개인의 권리이자 사생활의 핵심이다. 이를 지키지 못한 기업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쿠팡의 대응 태도였다. 초기에는 극히 일부 계정 정보만 노출된 것처럼 축소 발표했다가, 뒤늦게 전체 규모가 수천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체적으로도 몇 달 동안 유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방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의 보안 시스템뿐 아니라 내부 통제·모니터링 체계 전반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국내 굴지의 플랫폼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대응이다. 이번 사태는 플랫폼 산업이 성장하면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용자는 편리함을 얻기 위해 개인정보를 기업에 맡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수집한 정보의 양과 범위에 비해 보안 투자와 관리 시스템은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경
27일 누리호(KSLV-Ⅱ) 4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도 민간 주도 우주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우주개발은 더 이상 강대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21세기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이자 국가의 미래 산업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그 중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추격자’가 아니라 당당한 ‘참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제4차 나로호 발사 성공은 단일 로켓의 성능 검증을 넘어,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추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번 발사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 확보는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산업—위성 통신, 우주 탐사, 정밀 관측, 신재생 에너지, 심지어 우주 자원 개발에까지—전략적 가능성을 열어 준다. 세계는 지금 ‘우주 경제’를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나로호의 성공은 한국이 그 경쟁의 중심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성공은 한국 우주개발의 ‘지속성’과 ‘책임 있는 실행력’을 국제사회에 증명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과거 우주개발은 대형 프로젝트의 단발성 성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APEC 정상회의는 겉으로는 경제 협력과 기술 협업을 강조했으나, 그 이면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의 흐름은 훨씬 더 심각하고 냉혹했다. 세계는 지금 기술·안보·산업이 결합된 새로운 경쟁 구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제재망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독자 기술 체계를 구축하며 주변국에 경제·외교적 압박을 높이고 있다. 이번 회의는 한국이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따라서 지금 한국 외교에는 근본적 전략 재정비가 요구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외교 정책은 여전히 각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반응형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제시하는 의제에 따라 사안별 대응을 반복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런 접근은 우리 외교의 자율성을 축소시키고,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지를 줄이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이제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끌려가는 외교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설정한 장기 전략을 중심에 둔 외교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APEC에서 한국은 AI, 반도체, 기후 기술 등 중요한 주제를 제안했지만, 국제사회에 “한국이 만들어 갈 미래
올해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국정 전반을 점검하고 행정부의 책임을 묻는 헌법적 절차이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수단이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정쟁의 장”이라는 비판과 “견제의 본질”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이제는 감사를 마무리하며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다. 이번 국정감사는 과연 국민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국정 점검’이었는가, 아니면 정치적 이슈몰이에 그친 ‘정치 감싸기’였는가. 우선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 일부 상임위에서는 예산 낭비, 공공기관 부실 운영, 그리고 정부 정책의 허점을 면밀히 짚어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되어온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인사 적체 문제, 부동산 관련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중심으로 실질적 대책이 제시되었다. 산업·환경·복지 분야에서도 정부 정책의 현장성 결여를 지적하며 개선 방향을 모색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국정감사의 본령임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여야 모두 본연의 임무보다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국정감사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부 의원들은 감사장을 ‘정치 무대’로 삼아 언론 노
2025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이번 회의는 회원국 정상들은 물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참석하여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 회원국 주요국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국제적으로 그 위상과 리더십이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미중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로서 그 판이 커진 셈이다. 글로벌 경제와 국제 질서 등 지속적인 균형 발전에 대한 현안들이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 것인지 그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 각국간 정상회담을 통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외교적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특히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라는 점에서, 이번 APEC은 한국 외교의 방향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자리로 평가된다. 한미 정상회담은 안보와 경제 협력의 두 축에서 실질적 진전이 기대된다. 최근 북핵 위협의 고도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공급망 재편 등은 한미 동맹의 전략적 조정이 필요한 시점임을 말해준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안보 협력을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지만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감사장은 행정부의 정책을 점검하는 본연의 역할보다 정치적 공방의 무대로 전락하고 있다. 여야는 정책 검증보다 상대 진영 공격에 몰두하고, 피감기관의 책임자들은 눈치를 보며 답변을 회피한다. 국민이 기대한 ‘국정의 거울’은 어느새 ‘정쟁의 전장’으로 흐르고 있다. 국정감사는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자,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탱하는 핵심 장치다. 행정부의 행정 집행과 예산 운용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책무다. 그러나 현실의 감사장은 다가올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이 우선이다. 여당은 정부를 방어하고, 야당은 정권 심판의 장으로 삼는다. 이런 구도가 반복될수록 국정감사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국민 신뢰는 점점 멀어진다. 이제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 ‘보도를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국정의 실질을 파고드는 정책 감사가 되어야 한다. 피감기관의 부실한 행정과 예산 낭비, 정책 실패를 근거와 자료로 짚어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역할이다. 국정감사는 단순한 비판의 자리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바로잡는 국가적 과정
국회의 국정감사가 또다시 시작됐다. 매년 가을이면 반복되는 이 정치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자, 삼권분립의 근간 위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해마다 국감장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국정 감사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여야 간 공방과 정치적 폭로가 난무하는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은 국가 운영의 문제를 따지는 ‘감시의 장’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치 난타전’의 무대가 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정책 질의보다는 정치적 공세가 더 눈에 띈다. 여당은 정권의 방패를 들고, 야당은 공격의 창을 세운다. 증인 채택을 둘러싼 감정 싸움, 언론을 의식한 발언 경쟁, 그리고 SNS용 ‘한방 발언’이 넘쳐난다. 정작 국민의 삶과 관련된 주요 현안, 예컨대 고물가·청년실업·지역 소멸 같은 주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국정의 핵심을 논의해야 할 ‘감사’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될 때, 국회는 스스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셈이다. 삼권분립의 원리는 단순히 권력의 나눔이 아니라, 권력의 균형을 통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입법부는 감시자로서 행정부의 오남용을 견제하지만, 그 권한은 ‘공익’을 위한 것이지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