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동을 가진 것은 한국 정치에 있어 상징적 전환점이다. 정국은 최근 수년간 끝없는 대립과 불신으로 얼어붙어 있었고, 여야는 사사건건 대치하며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이번 만남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정치를 다시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첫 걸음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은 위기 국면에서 종종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여야와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 경제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국면 이후 여야 대표와 만나 국정 정상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협치 시도는 늘 당내 강경파의 반발, 선거 정국의 계산, 정략적 해석 등으로 성과 없이 끝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번 회동은 이런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회동에서 다뤄야 할 핵심 의제들은 분명하다.
예산 협상: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민생 현장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정부·여당은 확장재정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야당은 재정 건전성을 위한 수정안을 제시해 실질적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
민생 법안: 청년 주거·일자리 지원, 소상공인 금융지원, 고물가 대응 등 당장 시급한 민생 법안들을 정쟁에서 분리해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중장기 과제지만 더 미룰 수 없는 국가 개혁 과제다. 여야가 ‘정권 유불리’ 계산을 떠나 사회적 합의 기구를 활성화하고 개혁 로드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안보·외교 현안: 북핵 위협, 미중 갈등, 한일 관계 등 국가안보 문제는 초당적 공조가 필수다. 정부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야당은 국익 우선의 입장에서 책임 있는 협력을 보여야 한다.
이런 의제들이 단순 논의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 실행계획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번 회동은 성공이라 부를 수 있다. 대통령은 야당의 목소리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열린 태도를 보여야 하고, 여당은 무조건적 호위무사 역할을 넘어 견제와 균형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 역시 회동을 정쟁의 무기로 삼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역할에 나서야 한다.
한국 정치는 이미 국민의 인내심을 여러 차례 시험해 왔다. 이번 회동이 ‘사진 찍기’ 행사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민의 냉소와 불신은 더 깊어질 것이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정치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이번 만남을 한국 정치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주기를 강력히 촉구해 본다.